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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음식이 맛이 없는 이유

잠주5 발행일 : 2025-06-08

영국 음식에 대한 평판은 오래전부터 냉소적이다.

인터넷 밈에서는 “영국 음식은 시각도 후려친다”, “대체 이걸 먹으라고 만든 건가?”라는 반응이 넘친다.

하지만 이런 인식이 단순한 편견에서 비롯된 건 아니다. 20세기 전쟁, 산업화, 조리 문화의 정체, 향신료 거부감, 외식 산업의 질적 하락 등 다층적인 배경이
지금의 이미지로 이어져 왔다.

영국 요리는 단순히 ‘맛이 없다’기보다, ‘맛에 대한
접근 방식이 다르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하다.


영국음식이 맛이 없는 이유는


전쟁과 배급


1940년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은 독일의 해상 봉쇄로 심각한 식량 부족을 겪었고, 정부는 식품 배급제(Rationing system)를 실시했다. 빵, 고기, 설탕, 버터, 우유 등 모든 재료가 배급 대상이었고, 이로 인해 요리는 단순화와 생존 중심으로 전환됐다. “Woolton pie(울튼 파이)”라는 야채 파이는 전쟁기 대표 음식인데, 버터나 고기는 없고, 감자와 당근, 순무를 끓여서 만든 파이였다. 조미료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고, 향신료는 사치품 취급을 받았다. 수십 년이 흐른 뒤에도 많은 영국 가정은 여전히 이 ‘간신히 연명하던 방식’의 조리 습관을 이어갔다.


산업혁명 이후의 도시화

18~19세기 산업혁명은 영국인의 일상과 식탁을 빠르게 바꿨다. 농촌 기반 식문화가 무너지고, 도심 노동자 계층은 편리하고 값싼 식사에 의존하게 되었다. 이 시기 탄생한 ‘Full English Breakfast’조차도 영양을 고려한 식사라기보다, 고된 육체노동을 위한 고열량 식단이었다. 빵과 통조림, 감자와 베이컨은 그나마 손에 넣기 쉬운 재료였고, 장시간 불 앞에서 정성 들이는 요리 문화는 점차 사라졌다. 요리는 기능을 잃고 생존의 수단으로 전락했다. 이런 흐름은 20세기 후반까지도 영국 가정에서 이어졌다.


풍미의 결핍


식민지를 다수 보유했던 나라치고는, 영국 음식에서 향신료 사용이 극도로 제한적이다. 이는 17~18세기 귀족 문화와 청교도적 식습관에서 비롯됐다. 겉으로는 ‘소박한 식사’라 미화됐지만, 실상은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미각 태도였다. 고기나 채소는 소금, 버터, 식초만으로 조리됐고, 이는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 대신 풍미를 극단적으로 제한했다. 예를 들어 “Boiled beef and carrots(삶은 소고기와 당근)”이라는 전통 음식은 이름 그대로 끓인 고기와 야채가 전부다. 후추 정도만 간간이 뿌려지는 수준이며, 스파이시한 향미는 없다. 이런 조리 방식은 오랜 시간 영국인의 입맛을 한정짓는 역할을 해왔다.


관광지 중심 외식문화

오늘날 관광객이 체험하는 영국 음식은 대부분 런던 중심가나 소규모 펍에서 제공된다. 이곳에서는 미리 만들어둔 냉동 식재료, 데워 내는 피쉬앤칩스, 인스턴트 수프나 통조림 채소가 흔하다. 이런 음식은 맛있게 조리하기보다는 빠르고 저렴하게 내놓는 것이 우선이라, 본래 영국 음식보다 훨씬 떨어진 품질로 평가받게 된다. 실제로 BBC와 The Guardian 등의 현지 매체는 “관광지 외식 경험이 영국 음식의 품격을 왜곡시키고 있다”고 지적한다. 런던 외곽이나 지방으로 가면 오히려 정통 레시피를 유지한 영국 가정식이 존재하지만, 여행자는 이 음식에 접근하기 어렵다.


하지만 오늘의 영국 요리는 변하고 있다

2000년대 이후, 런던을 중심으로 한 영국 요리는 놀라울 정도로 변모했다. 제이미 올리버는 BBC 방송에서 “영국 요리의 실패는 조리법보다 태도의 문제였다”고 지적하며, 식재료와 조리법을 전면 재해석한 캠페인을 시작했다. 현재 런던에는 미쉐린 스타 식당이 60곳 이상 있으며, ‘누벨 브리티시(Nouvelle British)’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영국의 유명 셰프 핀 브래디는 한 인터뷰에서 “우리는 전쟁기 음식을 벗어나는 데 50년이 걸렸다. 지금부터가 진짜 영국 요리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런던, 브라이튼, 맨체스터 등 대도시에선 지역 농산물 기반의 슬로푸드, 향신료 융합 요리, 비건 브리티시까지 다양화가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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